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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의 특성은 버려라(feat. 자존감과 자존심의 차이)_세이노의 가르침 책리뷰

by 내가그린대로산다 2023.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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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챕터에서 저자인 세이노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지는 일곱가지 특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여기 등장하는 일곱가지의 내용 모두 구구절절 공감이 되지만 특히나 마지막 일곱번째 "가난한 자들은 경험자의 이야기 보다는 자기 판단을 더 믿는다." 는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가난한 자(혹은 실패한 자)들이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안듣고 자기 판단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것이 자존감, 그리고 자존심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

 

오늘은 '세이노의 가르침' 책 중 '가난한 자의 특성은 버려라' 챕터를 살펴보고, 이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고자 한다. ​혹시 '세이노'가 누구? 일본사람인가? 하는 분들은 이전 포스팅을 참고하시길 바란다.

 

가난한 자의 특성은 버려라

  • 박완서의 단편 ‘도둑맞은 가난’에서 여주인공의 가족은 아버지가 실직한 이후 어머니의 허영심과 체면 때문에 급속히 가난하게 된다. 결국 모든 재산을 날리고 판자촌으로 이사 온다. 그녀는 인형옷을 만드는 일이라도 하지만 가족들은 가난을 껴안지 못한 채 연탄가스로 자살하고 그녀 홀로 남는다. 어느날 그녀는 멕기 공장에 다니는 청년을 알게 되고“같이서 살면 하룻 밤에 연탄 반장을 아낄 수 있지 않느냐”는 이유로 그와 동거를 한다. 그러나 그 청년은 부자집 대학생 아들. 아버지가 빈민촌에 보내 가난을 경험시킨 것일 뿐 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은“이제는 부자들이 가난 마저도 훔쳐간다”고 울부짖는다.
  • 나도 소설 속의 그 부자 아버지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살펴볼 것을 권유한다. 내가 부자가 된 것은 부자들에 대한 정보도 없었던 시절에 부자들을 따라 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따라 하지 않으려고 기를 썼기 때문이다.( 70년대에는 부자 되는 법을 다룬 책도 거의 없었고 내 기억으로는 기껏해야 “소자본으로 부자 되는 법”이라는 책 한 권만 있었을 뿐이다.) 왜 사람들은 백만장자들의 특성만 배우려고 하는가. 가난한 자들에게도 공통적 특성이 있다. 그 특성들은 부모로부터 주로 영향을 받게 되지만 부모와는 상관없이 사회에서 보유하게 되는 경우도 많은 듯 하다.
  • 첫째, 돈 받는 것 이상으로는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정해진 시간에 좀 더 많은 땀을 흘리거나 시간을 초과하여 일한다고 해서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닌데 고용주들이 그런 요구를 하는 것은 자기를 좀 더 부려먹으려는 수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긴다. 오늘 1시간을 더 하였다면 그날 저녁 당장 대가가 더 주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니 돈 있는 사람들이 볼 때는 모두가 그놈이 그놈인 셈이므로 잘해 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고용주들의 이러한 태도를 가난한 사람들은“있는 놈들이 더 지독하다”고 바라본다. “있는 놈들”이“일을 더 헌신적으로 잘하는”사람을 곁에 두고 싶어한다는 것은 까맣게 모르며, 기회는 그“있는 놈들”로부터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 둘째, 아무 일이나 하려고 하지 않는다. 농촌인구가 도시로 몰려들던 60년대와 70년대에 미국인 문화인류학자 빈센트 브란트는 청계천 주변의 판자촌에 살면서 빈민층 연구를 하였고 흥미있는 논문을 발표했었다. 그 내용은, 한국의 판자촌 주민들은 외국의 슬럼가처럼 숙명처럼 가난이 뒤따르는 곳이 아니라 일정기간이 지나면 주택가로 옮겨간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6.25 동란 때 남쪽으로 내려온 피난민들이 처음에는 빈민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가난에서 상당수가 탈출하였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였을까? 일자리가 너무나도 부족한 상황에서 아무 일이나 닥치는 대로 하다가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일을 하지 않으면 당장 굶어 죽는 처지였기에 일을 가려서 한다거나 몸이 편한 일만을 찾는다는 것은 꿈 같은 이야기였다. 지금의 수많은 빈민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않는 일을 하지 않아도 굶어죽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일까?
  • 셋째, 자신이 받았던 돈의 액수 이하로는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루에 오만원을 받는 일을 해온 사람은 당장 일거리가 많지 않음에도 자신의 일당을 낮추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은 성남의 새벽 인력시장이나 농촌 인력시장에서 아주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나 같으면 하루 오만원 받는 일을 일주일에 3일 하느니 일단은 하루 3만원 일거리를 일주일 내내 할 것이고 나를 고용한 사람이 나를 반드시 다시 찾도록 만들 것이다. 그때 비로서 나는 내가 얼마를 받고 싶어하는지를 말할 것이다. 가난한 자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 이치를 모르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설픈 자존심 때문일까.
  • 넷째,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돈이 생기면 쓰고 싶어 안달이 난다. 예컨대 반포 고속 터미널 지하도 근처의 한 편의점(여기 예전 주인을 내가 조금 안다)에서 양주를 구입하는 고객들 중에는 그 지하도에서 노숙하는사람들도 있다. 비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돈을 아끼지 않으며 기분 내키는 대로 써 버린다.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비상금을 축 내지는 않는다는 중국인들과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약간의 돈이라도 생기면 술집으로 가거나 심지어 그곳 여자들에게 돈을 뿌리는 한심한 놈들도 자주 눈에 뜨인다. 이런 습성은 그 자녀에게도 물려지고 그 자녀들 역시 한푼이라도 생기게 되면 오락실로 달려가거나 PC 방에 가서 진을 친다.
  • 다섯째, 운명론을 받아들이고 사주팔자를 신봉한다. 정주영은 무엇을 했어도 부자가 될 팔자였지만 자신은 뭘 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고무신을 신고 달려도 신이 벗겨지지 않지만 자신은 워커를 신고 뛰어도 신이 벗겨져 넘어질 팔자이며 부자될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다고 믿는다. 때문에 노력에 의존하지 않고 점술가들이 하는 말에 귀를 쫑긋거린다. 생각과 행동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가난을 자초한다는 지적은 개 짖는 소리로 여기며 자신은 하느라고 하는데 타고난 팔자가 더러워서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실제로는 사주팔자를 자신의 게으름에 대한 방패막이로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 여섯째, 세상을 일방적으로 해석하고 쉽게 흥분한다. 순박하여서가 아니라 전체적 상황을 보는 시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흑백 논리에 아주 강하다. 세상은 회색인데도 말이다. 자기가 가난한 것은 못 배웠기 때문이거나 남들보다 약삭 빠르지 못하기 때문이며“있는 놈들이 돈을 다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 경우도 많다. 자기 판단에 대해 스스로 의심을 하지 않는다. 때문에 자기 생각이 잘못된 것 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별로 없다.
  • 일곱째, 경험자의 이야기 보다는 자기 판단을 더 믿는다. 예컨대 선택의 기로에 서서 나에게 조언을 구한 사람들 중 많은 수는 내가 충고한대로 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한다. 나는 이게 참 이상하다. 그렇게 할 것을 왜 아까운 내 시간을 허비하게 만드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게 자기 생각대로 하다가 세월이 지나면 다시 찾아오는데 내가 말해주면 뭣하랴. 또 다시 자기 생각대로 할 것이 뻔한데. 그들은 우주에는 총 3201억 5983만 7647개의 별이 있다고 내가 말하면 믿지만(내가 알게 뭐냐), 내가 경험적으로 알게 된 주의 사항들을 말하면 믿지 않는다. 하긴 칠조심이라고 써 놓아도 직접 손을 대보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지 않은가.
  • 당신이 미래에 부자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가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가난한 친구들을 찾아가 부자가 되는 방법에 대한 그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보라. 그들의 말에 당신이 공감을 한다면 당신도 가난한 자들의 공통적 특성을 갖고 있음을 깨달아라.

 

망하는 식당 주인들의 특징

인기 TV프로그램인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보면, 소위 빌런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런 빌런들을 보고 있으면 내 속에는 천불이 나지만, 빌런의 강도가 셀 수록 화제가 되고 시청률은 올라간다. 어쨌든 그들이 하는 행동을 보고 있으면 '아.. 저래서 저집이 장사가 안되는구나..'라고 자연스럽게 수긍을 하게 된다. 그 빌런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바로 저자가 일곱번째로 강조한 내용 '경험자의 이야기 보다는 자기 판단을 더 믿는다.'이다. ​

 

그들은 업계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성공 노하우를 친절하게 가르쳐줘도 그 방법대로 하지 않는다. 지적을 받는 순간에는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싹다 뜯어 고칠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보면 실패를 거듭했던 자신의 방법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그 방식이 맞다고 우긴다. 그로 인해 보고있는 시청자들까지 화가 나게 만든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아니 저럴거면 도대체 왜 저 프로그램을 신청한거야?"라는 혼잣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도대체 이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 가장 잘나가는 자기계발서 중 하나인 '역행자'의 내용을 빌리면 이런 사람들은 '자의식 해체'를 못하는 사람들이다. 역행자의 저자는 이 책에서 경제적 자유로 가기 위한 7가지 단계를 이야기 하는데, 그 중 첫 번째 단계가 바로 이 '자의식 해체' 라고 이야기했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유전자가 정해놓은 본성과 환경에 지배를 받는데, 그로 인해 이 자의식이라는 것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발동한다는 것이다. 즉, 누구보다 간절히 돈을 원하지만 '난 돈이 없어도 행복해'라고 자위하는 것이라던지, 일이 잘못되면 그 원인을 나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남탓을 하거나 상황이나 환경이 안좋았다고 이야기하는 것, 혹은 나보다 잘된 사람을 깎아 내리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래야 보잘것 없는 현실속에 있는 나 자신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내가 나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들이다.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내 자아의 상처가 될까 두려워서 자신을 꽁꽁 싸매는 것이다. 자칫 이런 사람들이 자존감이 매우 높은 사람들이라고 오해를 받는 경우도 있는데, 내 생각은 오히려 그 반대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자존심은 셀지 모르겠지만 자존감은 매우 낮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자존감과 자존심, 살면서 흔하게 듣는 단어이다. 가끔씩 두 단어가 같은 의미로 잘못 사용되는 경우를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자존감과 자존심의 차이는 뭘까? ​

 

자존감과 자존심의 차이

자존감은 자아존중감의 약자로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이다. 이는 어느날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살면서 겪는 긍정적 경험들의 누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그만큼 강해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더라도 내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믿음이 무너지지 않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고 더 괜찮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 반면에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타인의 부정적인 피드백을 견디기가 어렵다. 이를 받아들이면 자신이 괜찮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직면하는 것 같아서 괴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서 부정적 피드백들을 튕겨내는 것이다. 그들은 나는 틀리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이 틀렸다고 이야기한다. ​

 

내가 어떤 분야에서 잘못된 방법으로 하고 있거나 실패한다고 해서 내 자신이 무쓸모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지만 그 분야에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방법은 틀렸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방법을 바꾸면 되는데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내가 하고 있는 방법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곧 나라는 사람이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이를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이다. ​

 

한편 자존심은 남에게 굽히지 않고 자기 스스로의 품위를 높이는 마음을 의미한다. 언뜻보면 자존감과 별 차이가 없어보이는데, 자존심은 나의 내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주변과의 비교를 전제로 한다. 즉, 다른 사람과의 경쟁, 상대적인 비교 등에 의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자존감이 나의 내부에서 비롯되는 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자존감과 자존심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참고 : http://www.nexteconom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943

 

일반적으로 자존감이 낮고 자존심까지 낮을 경우, 타인으로부터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면 "맞아 나는 쓰레기야.."와 같은 식의 극단적인 자기 혐오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반면에 앞서 언급했던 빌런들의 경우에는 자존감은 낮지만 자존심은 매우 강한 경우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나는 잘하고 있는데 상황이 안좋아서, 환경이 안좋아서, 고객들이 내 진심을 몰라줘서 등등" 오로지 남탓과 상황탓 환경탓만이 있다. 그래야 그들이 상처받지 않으면서(자존감을 보호하면서), 자존심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

 

나는 문제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는가?

이렇게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지 않고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것에서만 찾다보니 아무것도 달라지지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삶이 계속 제자리인 것이다. 혹시 나 역시 그런 사람이 아닐까? 라고 의심이 된다면 이번 챕터에서 저자의 마지막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신이 미래에 부자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가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가난한 친구들을 찾아가 부자가 되는 방법에 대한 그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보라. 그들의 말에 당신이 공감을 한다면 당신도 가난한 자들의 공통적 특성을 갖고 있음을 깨달아라." ​

 

나는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고 실행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집중하면서 핑계를 대는 사람인가? 전자라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분명 앞으로도 긍정적인 쪽으로 삶이 변화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후자라면 앞으로의 삶도 지금과 비슷할 것이다(로또 당첨과 같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한). 그리고 나의 알량한 자존심은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존감은 여전히 바닥일 것이다. ​

 

그러므로 삶을 바꾸고 싶고 성장하고 싶고 달라지고 싶다면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는 습관을 들이자. 나보다 앞서서 경험한(성공한)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아들이고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자. 그래야 내가 성장할 수 있고, 내 삶이 변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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