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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설득하는 12가지 방법_1(카네기 인간관계론)

by 내가그린대로산다 2023.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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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논쟁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여러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했고, 그 과정에서 내가 맞고 상대방이 틀렸다는 확신이 들면 대부분 망설임없이 상대방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아마도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뭔가 잘난 사람이 된 것 같은 우월감을 느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부끄럽다. 그래서 그 결과로 '내가 얻은 것이 과연 무엇이 있나?'를 생각해보면 딱히 별 것도 없는데 말이다. 그저 알량한 자존심과 오만한 마음 정도만 남아 있을 뿐이다. 반면에, 상대방들은 어땠을까? 그들중에는 자존심이 매우 상해서 나에 대한 적대감을 가진 사람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고, 다행히 상대방이 나보다 훨씬 더 현명해서 그저 '네 말이 맞다'하고 수긍해 줬던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어찌됐든 그들에게는 나와의 논쟁이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

 

오늘 정리하고자 하는 '카네기 인간관계론'에는 이러한 내용들이 잘 나와있다. 오늘은 3부 사람들을 설득하는 12가지 방법 중 4장까지의 내용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

 

논쟁을 피하라

  • "왜 그사람이 틀렸다는 걸 증명해야 해? 그러면 그 사람이 널 좋아할까? 그냥 체면을 살려 주면 좋잖아? 그 사람은 네 의견을 묻지도 않았어. 원치도 않았고. 그런데 왜 그런 사람과 논쟁을 해? 예리한 칼날은 피하고 보는 법이야."
  • "예리한 칼날은 피하고 보라." 이 말을 한 사람은 지금은 가고 없지만, 그가 가르쳐 준 교훈은 계속 남아 있다. 정말 필요했던 교훈이었다. 나는 당시 못 말리는 논쟁의 달인이었다. 나는 수도 없이 많은 논쟁을 귀 기울여 듣기도 하고, 비판도 하고, 거기에 참여도 하고, 그 결과를 지켜보기도 했다. 그 결과 내가 도달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다. 바로 논쟁을 피하는 것이다. 방울뱀을 피하듯, 지진을 피하듯 논쟁을 피하라. 논쟁이 끝날 때, 논쟁을 벌이던 사람 중 열에 아홉은 자신이 절대 옳다는 확신을 더욱 굳힌 상태가 된다.
  • 논쟁은 이길 수 없다. 논쟁에 지면 진 것이고, 이긴다고 해도 진 것이다. 왜냐고? 글쎄, 다른 사람에게 승리를 거두고, 그의 주장에 구멍을 숭숭 뚫어 놓고, 그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증명한다고 하자. 그래서 어쩌겠다는 건가? 기분이 좋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상대방은 어떤가? 당신은 상대방이 열등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다. 그 사람은 당신의 승리에 분개하리라. "자신의 의지에 반해 설득당한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 당신은 옳을 수 있다. 당신이 주장을 펼치는 동안은 정말 옳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문제라면 당신의 옳고 그름은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의 고객이나 연인이나 남편, 아내가 혹시라도 우리와 논쟁하게 된다면 반드시 그 논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해 주자. 당신과 상대가 거의 비슷하게 옳다면 아무리 큰 건이라도 양보하라. 당신이 분명히 옳더라도 사소한 건이면 그냥 양보하라.
  • "길에 대한 권리를 놓고 개와 다투다가 물리느니 그냥 개에게 길을 내주는 편이 더 낫다. 개를 죽여 봐야 물린 상처가 저절로 낫지도 않는다." 따라서 첫 번째 규칙은 다음과 같다.
  • 규칙 1 : 논쟁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논쟁을 피하는 것이다.

 

적을 만드는 확실한 방법과 그 예방법

  •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대통령이었을 때, 모든 경우에서 75% 정도만 옳을 수 있다면 자신이 바라는 최고의 기대치에 달한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람 중 한 명의 기대치가 그 정도라면 당신과 나는 어느 정도이겠는가? 55% 정도만 옳다고 확신할 수 있어도 당신은 월스트리트로 가서 하루에 백만 달러를 벌고, 요트를 사고, 꿈에 그리던 여성과 결혼할 수 있을 것이다. 55% 옳다는 확신이 없다면,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틀렸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
  • 굳이 말로 하지 않더라도 표정으로, 억양으로, 제스처를 통해서 다른 사람이 틀렸다는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 틀렸다고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당신 생각에 동의하도록 만들 수 있는가? 절대로 아니다! 당신은 그 사람의 지성, 판단력, 자부심, 자존심에 일격을 날린 것이다. 그 사람은 그 일격을 받아치고 싶을 뿐 그 일격으로 인해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일격을 날린 다음 당신이 플라톤과 칸트의 논리를 들이대 보았자 그의 의견을 바꿀 수는 없다. 이미 당신은 그의 감정을 다치게 했기 때문이다.
  • 아무리 우호적인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꾸기란 어렵다. 그런데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왜 스스로를 더 힘든 처지에 밀어 넣는가? 어떤 것을 증명해야겠다면 아무도 모르게 증명하라. 섬세하고 재치 있게 증명해서, 당신이 증명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만들어라.
  •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되풀이해서 말했다. "내가 한 가지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해 봐야 소크라테스보다 현명한 사람이 될 수는 없으니, 나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틀렸다는 말을 그만두기로 했다. 많은 효과가 있었다.
  • 어떤 사람이 당신이 생각하기에 틀린 말을 한다고 치자. 그가 틀렸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고 하자. 그럴 때는 이렇게 말하는 게 좋을 것이다. "글쎄요. 자, 보세요! 저는 다르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도 틀릴 수 있죠. 자주 틀리기도 해요. 하지만 틀렸다면 바로잡고 싶습니다. 사실을 한 번 들여다보기로 합시다." 이런 말은 마법과 같은 효과가 있다. 진짜 마법이다. "저도 틀릴 수 있죠. 자주 틀리기도 해요. 사실을 한 번 들여다보기로 합시다."
  •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이 방법이다. "과학자들은 어떤 것도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요. 단지 사실을 찾으려 할 뿐이죠."
  • 당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어떠한 어려운 상황도 마주치지 않게 될 것이다. 모든 논쟁은 중단될 것이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처럼 공정하고 열린 마음, 넓은 마음을 가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 역시 틀릴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사실이라고 익숙하게 믿어 왔던 것들을 계속해서 믿고 싶어 한다. 따라서 어떤 이가 우리의 가정(가설)에 어떤 의심이라도 제기하면 우리는 분개하며, 그 가정을 지킬 수 있는 모든 변명거리를 찾는다. 그 결과 우리의 합리성이라는 게 사실은 우리가 이미 믿어 왔던 것을 계속 믿기 위한 주장을 찾아내려는 시도에 불과한 것이 되어 버린다.
  • "너는 아마도 네가 이미 알고 있는 것 이상은 알지 못하게 될 거야. 네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란 참 보잘것없는데도 말이지." 내가 벤저민 프랭클린에 대해서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가 이 현명한 비판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마라. 그래야 얻을 게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당신의 생각에 동의하도록 만들고 싶다면, 두 번째 규칙은 다음과 같다.
  • 규칙 2 :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라. 절대로 그 사람이 틀렸다고 이야기하지 마라. ​

 

틀렸다면 인정하라

  • 어차피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처지라면, 다른 사람보다 먼저 스스로를 비판하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전혀 모르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비난을 듣느니 자기 자신의 비판을 듣는 게 훨씬 쉽지 않을까? 다른 사람이 말할 기회를 잡기 전에 그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말하고 싶은, 혹은 말할 것 같은 모든 비난을 스스로에게 쏟아부어라. 그러면 그 사람은 김이 빠지게 될 것이고, 아마도 열에 아홉은 너그럽고 용서하는 태도를 취하며 당신의 잘못을 최소한으로 줄여 생각할 것이다.
  • 아무리 바보라도 자신의 실수에 대해 변명할 수 있다. 대부분의 바보들은 변명을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달리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행위는 숭고한 기쁨을 가져다준다.
  • 솔직히 말해보자면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틀릴 때가 훨씬 더 많다. 그럴 때는 빠르고 분명하게 우리의 실수를 인정하도록 하자. 이 방법은 놀라운 결과를 낳기도 하고, 못 믿을수도 있겠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자신을 옹호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기도 하다.
  • 싸워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하지만 양보하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는다. ​ 따라서 사람들을 당신 생각대로 움직이고 싶다면 세 번째 규칙을 기억하는 게 좋을 것이다.
  • 규칙 3 : 당신이 틀렸다면 빨리, 분명히 인정하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 확실한 방법

  • 당신이 화가 나 다른 사람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고 하자. 당신은 감정을 배설했으니 기분이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어떨까? 그 사람도 당신의 기쁨을 같이 나눌까? 당신의 호전적인 어조와 적대적인 태도가 그 사람으로 하여금 당신 의견에 동의하게 만들어 줄까?
  • 어떤 사람이 당신과 생각이 다르고 그 사람의 마음이 당신에 대한 적대감으로 가득 차 있을 때는 아무리 훌륭한 논리를 들이대더라도 그 사람이 당신에게 동의하도록 만들 수 없다. 야단치는 부모, 군림하려 드는 사장과 남편, 잔소리를 늘어놓는 배우자 모두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바꾸려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억지로 그 사람들을 당신이나 내 생각에 동의하게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친절하고 우호적이라면, 그들을 더 친절하고 우호적으로 만들 수 있다.
  • 링컨도 사실상 같은 이야기를 했다. 이미 백년 전에 했던 링컨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벌꿀 한 방울에 한 통의 쓸개즙보다 더 많은 바리가 꼬인다'는 오래된 격언은 진실이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을 당신 생각에 동의하게 만들고 싶다면, 먼저 당신이 진정한 친구라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벌꿀 한 방울이다. 당신이 벌꿀 대신 무엇이라고 부르든 간에, 그것은 그 사람의 마음을 얻는 확실한 방법이다."
  • 햇볕은 바람보다 빠르게 코트를 벗길 수 있다. 친절과 우호적인 접근 그리고 인정은 세찬 위협이나 폭풍 같은 비난보다 훨씬 더 쉽게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 ​사람들을 당신 의견에 동의하도록 만들고 싶을 때는, 잊지 말고 네 번째 규칙을 사용하라.
  • 규칙 4 : 우호적으로 시작하라. ​

 

나는 왜 내가 옳다는 것(상대방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을까?

아마도 이 또한, 이 책 '인간관계론'의 핵심 메시지인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으로 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논쟁을 통해 내가 상대방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것을 부각시킴으로써 스스로 중요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내가 중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우월한 존재인 것처럼 행동할수록 사람들은 나를 점점 더 멀리 할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누구에게도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내가 논쟁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 '승리감'따위의 감정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면,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그 논쟁 방식을 취해서는 안 된다. 결과적으로 그 논쟁을 통해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에는 두 가지 방법을 말하고 있는데 하나는 논쟁 자체를 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틀렸을 수도 있음을 먼저 인정한 뒤, 사실을 한 번 찾아보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사실 상대방이 틀렸고 내가 옳다고 확신하면서 상대방이 옳다고 그냥 인정하거나, 논쟁을 회피 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에 첫 번째 방법은 어지간한 내공의 소유자가 아닌 이상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두 번째 방법으로 마음이 기울 것인데,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 방법을 추천하고 싶다. 왜냐하면 아무리 완곡하게 표현해서 '사실'을 확인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이야기가 틀렸다는 것을 확인하고 기분이 좋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두 번째 방법 역시 누가 맞고 누가 틀렸는지 확인할 수는 있겠지만 (맞든 틀리든) 궁극적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논쟁을 피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이 경우에는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약간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가능성은 바로 상대방이 다른 경로를 통해서 자신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되는 경우이다. 그 경우 상대방이 어느 정도의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와의 논쟁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견을 존중해준 나에게 호감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그 상황에서도 딱히 부끄러움을 못느끼거나, 감정의 변화가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어차피 다른 방법으로도 안되니까 포기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논쟁을 피할 경우에는 괜찮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틀린 것을 증명하는 방법을 통해서 그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은 아마도 0%에 가까울 것이다. ​

 

사실 이번 챕터를 정리하면서, 얼마 전에 읽었던 개리 마커스의 '클루지'라는 책의 한 파트가 생각났다.

  • 우리가 가진 신념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굉장히 왜곡되어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주제가 무엇이든 우리의 신념을 위협할 만한 것보다 우리의 신념에 잘 들어맞는 것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확증 편향'이라고 부른다.
  • 우리는 일단 어떤 것이 (무슨 이유에서든) 참이라고 결정하면 그것을 믿기 위해 종종 새로운 이유들을 만들어내곤 한다. 한마디로 말해 만약 여러분이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을 믿을 만한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내도록 할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그것을 정말로 믿기 시작할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원래의 증거가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명백히 판명이 났는데도) 여러분을 꾸짖기까지 할 것이다.
  • 과연 신념은 우리가 참이라고 아는 것일까 아니면 참이기를 바라는 것일까? 우리는 이 둘의 차이를 말하기가 종종 쉽지 않은데, 이런 사실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정확히 말해주고 있다. ​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

이렇게 인간은 자신이 믿고 싶은대로 믿는 경향이 있는데 어떻게 나의 경험, 생각, 신념들이 정답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내가 정답이라는 이런 생각 자체가 매우 오만한 것일 수 있으며, 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항상 틀릴 수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 '인간관계론'을 읽으면서 그런 태도가 더욱 더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세상 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맞는 것과 틀린 것으로 딱 구분될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내가 정말 틀림없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 언제나 변하지 않는 진리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나? 지금은 누구나 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라고 하는 '지구 평면설'이나, '천동설'도 한 때는 진리로 여겨지던 시대가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정답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나 또한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그 동안 잘난척 시건방 떨며 내가 옳다고 주장하던 모습들을 생각하며 반성을 많이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

 

그래도 내가 배운 것이 있다면, 내가 가진 신념들이 사실은 왜곡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 내가 틀릴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는 것)과, 어쨌든 내가 옳다고 하더라도 내가 옳고 상대방이 틀렸다는 주장을 했을 때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당신은 옳을 수 있다. 당신이 주장을 펼치는 동안은 정말 옳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문제라면 당신의 옳고 그름은 아무 소용이 없다." 이번 챕터에서는 이 문장 하나만 가슴에 새겨도 충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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