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인간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클루지_오염된 신념)

by 내가그린대로산다 2023. 4. 7.
반응형

개리 마커스의 '클루지' Chapter 2에서는 인간의 '신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 인간이라는 종이 얼마나 쉽게 속아 넘어가는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념이라는 것이 보편적인 진리와는 거리가 매우 멀고 그때 그때의 감정이나 기분, 욕구, 목표, 사리사욕 따위에 오염되어 있으며 기억이라는 잘못된 정보에 의해서 조작될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지에 대해서 본 챕터에서는 다양한 사례들과 함께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신념과 관련된 우리의 능력은 훌륭한 공학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진화의 편법에 가깝다고 이야기 하며 본 챕터에서 그 이유들을 하나씩 말해준다. ​

 

다음은 이 책 '클루지'에 나오는 우리의 '오염된 신념'과 관련된 주요 내용들이다.

 

오염된 신념 - 속아 넘어가도록 타고난 사람들

  • 우리는 종종 이런저런 신념들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하며, 나아가 우리가 부적절한 정보의 영향을 얼마나 크게 받는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곤 한다.
  • 정신의 오염이란 이처럼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처신하고 있다는 우리의 주관적 인상은 객관적 현실과 좀처럼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사고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인간의 신념은 기억에 의해 매개되기 때문에, 우리가 아주 어렴풋이 의식하는 사소한 것들의 영향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 우리의 기억은 일차적으로 우리 자신의 경험에 초점이 맞춰지도록 조직된다. 하지만 이런 불균형을 상쇄하기 위한 조치는 거의 취해지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더 많은 일을 했다고 믿게 되고, 독선적인 확신 속에 불끈 화를 내기까지 한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집안일을 함께 하기이든 학술논문의 공동 집필이든 거의 모든 협동작업에서 주관적으로 지각된 각 개인의 공헌의 합은 실제로 수행된 작업의 총량을 초과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한 일은 잘 기억하지 못하면서 자기가 한 일은 잘 기억한다. 때문에 누구나 다른 사람이 부당하게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 오염의 또 다른 원천은 일종의 편리한 사고 방식, 곧 사람들이 자신에게 친숙한 것을 좋은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다. 우리 선조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친숙한 것을 선호하는 편향은 충분히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우리 조상의 조상의 조상이 알았고 또 그를 해치지 않았던 것이라면 그가 몰랐던 것보다 안전한 것일 확률이 높다. 친숙한 것을 선호하는 행동은 우리 선조들의 일상 속에서 적응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선택된 것일지 모른다.
  • 그러나 우리가 친숙한 것에 집착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예컨대 사람들은 이미 실행되고 있는 정책을 그렇지 않은 정책보다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기존 정책이 잘 작동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객관적인 자료가 없을 때에도 그러하다.
  • 우리의 사고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빠르고 자동적이며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는 사고이고, 다른 하나는 신중하고도 판별력 있게 천천히 진행되는 사고이다. 반사 체계는 숙고 체계보다 더 오래된 것이며, 거의 모든 다세포생물에게서 이런저런 형태로 발견된다. 반면 숙고 체계는 아주 소수의 종들만, 어쩌면 인간만 지니고 있는 것이다.
  • 내가 이 두 번째 체계를 '합리적' 체계가 아니라 굳이 '숙고'체계라고 부르는 까닭은 이 체계가 정말로 합리적인 사고를 가능케 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비록 숙고 체계가 진화의 최근 산물로서 더 정교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의 결정은 덜 객관적인 반사 체계가 제공하는 간접 정보에 거의 언제나 의존한다. 그래서 숙고 체계의 지배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아무리 주의 깊게 추론하려고 애를 써도 컴퓨터과학자들이 흔히 말하듯이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
  • 우리는 주제가 무엇이든 우리의 신념을 위협할 만한 것보다 우리의 신념에 잘 들어맞는 것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확증 편향'이라고 부른다. 어쩌면 확증 편향은 맥락적으로 조직된 기억의 불가피한 결과일지 모른다. 우리는 기억을 끄집어낼 때 컴퓨터처럼 모든 관련 자료를 체계적으로 검색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일치하는 것들을 찾는다. 때문에 우리가 처음에 갖고 있던 생각을 확증하는 것들이 우리의 주의를 끄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우리는 우리가 믿고 싶은 것을 우리가 믿고 싶지 않은 것보다 훨씬 더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동기에 의한 추론'이라고 불리는 편향으로서 확증 편향과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확증 편향은 우리의 신념과 일치하는 자료에 주의가 쏠리는 자동적인 경향인 반면, 동기에 의한 추론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보다 좋아하지 않는 것에 대해 더 까다롭게 따지는 보완적인 경향이다.
  • 우리는 일단 어떤 것이 (무슨 이유에서든) 참이라고 결정하면 그것을 믿기 위해 종종 새로운 이유들을 만들어내곤 한다. 한마디로 말해 만약 여러분이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을 믿을 만한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내도록 할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그것을 정말로 믿기 시작할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원래의 증거가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명백히 판명이 났는데도) 여러분을 꾸짖기까지 할 것이다.

출처 : pixabay

  • 진화의 산물이자 클루지인 우리 인간은 종종 결론에서 출발해 그것을 믿기 위한 이유를 찾는 식으로 거꾸로 나아가는 비합리적인 존재이다.
  • 헛소문도 많이 들으면 진실이 된다. 우리 인간은 우리가 듣는 것을 자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그 이유는 애당초 지각을 위해 사용되던 기제로부터 신념이 진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각의 경우에는 우리가 보는 것의 상당 부분이 참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대개 믿어도 별 문제가 없다.
  • 그런데 이렇게 신념의 주기까지 "먼저 쏘고 나중에 질문하라."는 식으로 진행되면 문제가 생긴다. 왜냐하면 언어의 세계는 시각의 세계보다 훨씬 덜 믿을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화는 흔히 그렇듯이 이 경우에도 앞으로 생길 결과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누적된 기술로 신념의 기제를 제작하는 게으른 방식을 취했다. 우리가 들었거나 읽은 것을 별다른 의심도 없이 받아들이는 경향은 이런 결과의 하나일 뿐이다.
  • 과연 신념은 우리가 참이라고 아는 것일까 아니면 참이기를 바라는 것일까? 우리는 이 둘의 차이를 말하기가 종종 쉽지 않은데, 이런 사실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정확히 말해주고 있다.
  • 흔히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야만 했던 동물들에서 진화한 호모사피엔스에게 우리가 무엇을 아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를 기억하고 적절히 고려할 수 있는 체계란, 게다가 우리가 그저 그랬으면 하고 바라는 것에 오염되지 않은 체계란 낯선 단어일 뿐이다.

 

클루지 '오염된 신념' 파트를 읽고 깨달은 점 

첫 번째는 이 책에 나온 것처럼 잘못된 신념으로 인해 이해할 수 없는 모습들을 보였던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서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게 됐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타진요' 같은 사람들이다. 나중에는 심지어 교수가 직접 나와서 본인 학생이라고 인터뷰를 하고, 졸업 증명서라는 객관적인 자료들까지 보여줬는데도 절대로 믿지 않았던 그들을 보면서 "도대체 왜저럴까?"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들은 그냥 자신들이 믿고 싶었던 것을 믿었던 전형적인 사례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 밖에도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사람들이나 폰지 사기와 같은 것에 휘말리는 사람들이 모두 "여러분이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을 믿을 만한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내도록 할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그것을 정말로 믿기 시작할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원래의 증거가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명백히 판명이 났는데도) 여러분을 꾸짖기까지 할 것이다." 이 대목과 아주 어울리는 적절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

 

즉, 이를 통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신념들, 특히나 강하게 믿고 있는 신념일수록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그 신념의 원천은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스스로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는 '기브앤테이크', '오리지널스' 등의 책으로 유명한 애덤 그랜트의 '씽크 어게인'에 나오는 내용과도 유사한 부분이다. '씽크 어게인'이라는 책에서 저자인 애덤 그랜트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정체성(ex. 나는 소심한 사람이야, 나는 공감을 잘 못하는 사람이야 등)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10년 전 아주 우연한 어떤 계기로 생겨난 것일 수 있으며, 지금의 나는 그런 사람일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스스로를 그렇게 규정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내가 가진 그 신념이라는 것의 원천이 사실은 지금의 나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일 수 있으며(10년전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얼마든지 지금의 나에게 유리하도록 바꿀 수 있다는 것, 아니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

 

두 번째 깨달음 또한 바로 이 지점과 맞닿아 있는데, 이렇게 쉽게 믿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 우리 인간의 특성을 활용해서 얼마든지 나의 신념과 정체성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잘못된 신념들을 올바른 신념으로 바꾸는 것 또한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별 볼일 없던 삶을 살던 사람이 깨달음을 얻고 위대한 성공을 거뒀던 수 많은 사례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

 

"헛소문도 많이 들으면 진실이 된다"

는 이 책의 말처럼 내가 평소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환경에 따라 그 사람의 신념이 굳어진다. 즉, 부정적이고 우울하며 세상에 대해서 비관적인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면 내가 아무리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신념을 가지려고 노력해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반대로 내가 조금은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사람일지라 하더라도 긍정적이고 성장하려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만 모여있는 곳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면 신념 자체가 바뀔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만약 내가 성공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성공한 사람들, 혹은 성공하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야한다. ​

 

혹시 마음은 누구보다도 더 성공한 삶을 갈망하지만, 내가 매일 듣고 보는 것들이 온통 성공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운 것들만을 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둘러보기를 바란다. 우리는 정말로 우리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그리고 내가 믿는대로 그 삶이 흘러간다. ​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