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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언어는 총체적인 클루지다

by 내가그린대로산다 2023.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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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완전하다면 애매하지도 않고, 체계적이고, 안정되고, 중복되지 않으며, 나아가 우리의 모든 생각을 표현해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언어에는 단어의 발음부터 문장 형성에 이르기까지 온갖 결함과 단점과 특이 사항들이 존재한다. ​

 

클루지 Chapter 4에서는 이러한 '언어의 불완전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오늘은 그 내용들에 대해서 정리해보고자 한다. ​

언어의 비밀 - 언어,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하다

  • 인간의 언어에서 애매함은 예외라기보다 상례(보통 있는 일)에 가깝다. 'run'이라는 단어는 달리기에서 스타킹이 찢기는 것, 야구의 득점까지 무엇이든 의미할 수 있으며, 'hit'는 철썩 때리기에서 히트곡까지 무엇이든 뜻할 수 있다. "I'll give you a ring tomorrow" 라고 말하면 반지를 선물하겠다는 얘기인가, 아니면 그저 전화를 걸겠다는 것인가?
  • 아주 대수롭지 않은 단어가 애매할 때도 있다. 그런가 하면 개개의 단어들은 분명해도 전체 문장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언어에는 막연함의 문제도 있다. "밖이 따뜻하다."라고 말할 때 따뜻함과 그렇지 않은 것의 경계는 어디인가? 또한 '무더기' 같은 단어를 생각해보자.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돌이 쌓여야 무더기가 되는가?

출처 : pixabay

  • 우리는 단어나 문장이 정확하지 않더라도 언어의 불안정함이나 막연함을 대체로 의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언어를 해독할 때 문법에 담긴 정보를 우리의 세상 지식으로 보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어 이외의 것에 의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언어의 불완전함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다.
  • 컴퓨터 언어는 이런 문제로 시달리지 않는다. c언어, java 같은 언어에서는 불규칙성이나 애매함이 여기저기서 발견되지 않는다. 이것은 언어가 꼭 애매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원칙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프로그램만 잘 짜여 있다면, 어떤 컴퓨터도 다음 과제가 무엇인지를 몰라 갈팡질팡하지 않는다. 그러나 컴퓨터 언어가 아무리 명쾌하다고 하더라도 세상에 C언어나 java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컴퓨터 언어의 구조가 인간의 마음에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 진화의 과정에서 기능과 역사가 충돌할 때, 즉 훌륭한 설계와 이미 쉽게 이용될 수 있는 원재료가 조화하지 못할 때, 특이 사항 들이 나타난다.
  • 언어라는 잡탕 안에는 특이 사항들의 주요 원천이 되는 적어도 세 가지 충돌이 발견된다.
    • 우리 선조들이 소리 내는 방식과 우리가 이상적으로 소리 낼 수 있는 방식 사이의 간극
    • 우리의 단어들이 영장류의 세계 이해를 바탕으로 형성 되었다는 점
    • 우리의 결함 많은 기억 체계가 위급할 때는 잘 작동하지만, 언어를 위해서는 그다지 적당하지 않다는 점
  • 이것들 가운데 하나만 있어도 언어를 불완전하게 만들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가 함께 있으므로 이것들이 만들어내는 언어란 그야말로 총체적인 클루지다.
  • 우리의 목구멍(성도)은 오직 단어에만 조율되어 있다. 전 세계 모든 언어들이 낼 수 있는 소리는 총 90가지를 넘지 못하며, 한 언어가 사용하는 소리는 그것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 귀가 식별할 수 있는 소리의 다양함을 생각할 때 이것은 터무니없을만큼 적은 양이다.
  • 언어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이렇게 빨리 변화할 수 있는 것은 왜 그럴까? 그 답변의 일부는 언어 사용 이전의 우리 선조들이 무한히 정밀하고자 했던 철학자나 수학자가 아니라, 늘 급하게 서둘러야 했던 그리고 최종적인 해결책보다는 '그런대로 쓸 만한' 해결책으로 종종 만족해야 했던 동물이었다는 데 있다.
  • 진화의 보상을 받는 자들은 너무 신중하게 행동하는 자들이 아니라 잽싸게 결정하는 자들이다.
  • 자신에게 분명하다고 상대에게도 분명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문법과 관련해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의 의도대로 구문 분석이 이루어지도록 문장을 산출하는 문제일 것이다. 우리는 어떤 문장이 우리에게 분명하면 그것을 듣는 사람에게도 분명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종종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의 상당 부분은 매우 애매하다.
  • 문학의 어려움은 쓰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뜻하는 바를 쓰는 것이다.
  • 부주의로 인한 애매함, 특이한 기억, 순간 판단, 자의적인 연상, 우리 내면의 시간장치를 꼬이게 만드는 복잡한 작업 수행 등을 합쳐보면 무엇이 출현하는가? 막연함, 특이함, 자주 오해를 낳는 언어가 바로 그것이다.
  • 언어는 '그런대로 쓸 만한' 것이지만, 완전한 것은 아니다. 대개는 별 문제가 없지만, 때로는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심지어 우리를 그릇된 길로 이끌기도 한다.
  • 언어를 특징짓는 대혼란에 나름의 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진화의 논리다. 우리는 맥락에 따라 말소리를 다르게 내면서 동시적으로 조음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내는 소리는 원래 소통 대신 소화를 위한 통로였던 3차원의 구멍 주변에 혀를 부딪쳐서 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She sells seashells by the seashore."처럼 혀가 꼬여 제멋대로 춤추는 일이 생긴다. 왜냐하면 언어는 원래 다른 목적들을 위해 진화한 장치들을 되는 대로 짜 맞춘 것을 토대로, 아주 급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유명한 말이다.

또한, 독일의 언어철학자인 훔볼트는 "우리는 언어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대로 현실을 인식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는 곧 우리는 자신의 언어 수준 만큼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언뜻 어떤 느낌인지 알고는 있지만 막상 말로 표현하려고 하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상태인 어떤 개념이 있다고 해보자.

나는 이 개념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서 그런 개념이 정말 나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맞을까?

만약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면,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도 없고 나 스스로도 정의할 수 없는 그런 개념이 정말 존재하는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결국 내가 언어적으로 담아낼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이 설령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나의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언어의 한계는 곧 나의 세계의 한계가 된다. ​

 

우리의 언어 또한 클루지라는 불편한 사실

그 만큼 언어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중요하다. 그 사람의 언어의 수준이 곧 그 사람의 삶의 수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평소 나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책 클루지를 읽은 지금, 조금은 마음이 혼란 스럽다. 이 책의 저자인 개리 마커스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그야말로 총체적인 클루지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라는 것에 애매모호한 부분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야 당연히 잘 알고 있었지만, 사실 왜 그렇게 언어에 불완전하고 모호한 부분들이 많을까?에 대해서는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면서 살아왔을뿐이다. 그런데 저자의 말처럼 언어가 애초에 완벽하게 설계 되었다면 모호하거나, 중복되거나, 막연하거나 하는 일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하여 우리들 대부분은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특별히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

 

이 챕터를 읽으면서 우리의 언어 역시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예전의 딱히 성능이 좋지 않은 상태부터 계속 업데이트 과정을 거치며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는 것 정도는 인식하게 되었다. 즉, 우리의 언어 또한 클루지(어떤 문제에 대한 서툴거나 세련되지 않은 해결책)의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불완전하고 여러가지 결함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질문에는 사실 답을 내리지 못했다. "나는 그럼 이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 책의 단점이 있다면, 그 지점까지 친절하게 이야기해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문제에 대해서 가르쳐 줬으니, 해결책은 독자인 너희들이 직접 고민해봐." 라는 듯한 느낌이다(정정한다. 맨 마지막 Epilogue에서 각 챕터 별 해결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클루지를 극복할 수 있는 13가지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

 

어쨌든 다른 챕터들에서는 내 나름대로 대안들을 떠올려 봤는데, 아직 이 챕터에 대한 대안은 딱히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래도 이 챕터에서 한 가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이 있다면, 내가 말하는 것을 상대방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면 안된다는 점, 반대로 상대방이 말하는 것을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면 안된다는 점일 것 같다. 언어는 그 자체로 클루지이므로 항상 모호함을 내포하고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자연히 커뮤니케이션 과정 상에서 오류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런 가능성에 대해서 상당히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중요한 커뮤니케이션에서 내가 화자라면 상대방이 나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했는지 반드시 한번 더 체크하고, 반대로 내가 청자라면 내가 상대방의 의도대로 정확히 이해했는지 질문하는 습관을 들이면 좋을 것이다. 그것만 잘 실천하면서 살아도 세상 살이가 한결 나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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