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루지 Chapter 5에서는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인 개리 마커스는 행복이라는 것의 정의는 사람마다 각각 다르지만(ex. 쾌락,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느낌, 성공적으로 마친 일에 대한 만족, 시간이 가는 것도 모를 만큼 자신이 잘 하는 어떤 것에 빠져 있는 상태 등),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행복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가 아니라,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도대체 왜 인간이 행복에 관심을 가지는가?' 라는 점이라고 이야기 한다. 저자는 우리가 느끼는 행복이라는 상태 또한 클루지의 하나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행복에는 결함과 오류가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오늘은 저자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이 책 클루지에 나오는 '행복'에 대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위험한 행복 - 무엇이 정말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 쾌락이 우리의 안내자라는 생각과 유사하게 우리는 우리가 보는 거의 모든 것들을 자동적으로 '유쾌한' 또는 '불쾌한'의 범주로 분류한다.
- 그러나 "우리에게 좋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 선조들에게 좋은 것이었음에 틀림없다."라는 단순한 생각은 금방 곤란에 처한다. 우선 우리에게 쾌락을 가져다주는 많은 것들은 실제로 우리의 유전자를 위해 많은 것을 하지 않는다. 미국의 평균적인 성인은 깨어 있는 시간의 거의 3분의 1을 텔레비전, 스포츠, 친구와 술 마시기 같은 여가활동에 소비한다. 하지만 이런 활동들은 직접적인 유전적 이익이 거의, 또는 전혀 없는 것들이다. 정말로 쾌락은 이상적인 적응의 산물일까?
- 만약 사람들이 정말로 전반적인 안녕을 최대화하려고 노력한다면, 장기적으로 보아 지속적인 행복을 거의, 또는 전혀 가져다주지 않는 일들을 왜 그렇게 많이 하는가?(ex. TV 시청, 담배, 술, 마약 등)
- 쾌락이 동기 유발자라는 핵심 생각은 충분히 일리가 있지만, 쾌락의 체계 전체는 꼭대기에서 밑바닥까지 클루지라는 사실을 결국에는 깨닫게 될 것이다. 만약 정말로 쾌락이 우리 유전자의 필요를 충족시키도록 우리를 인도한다면, 왜 우리 인간은 이런 필요에 기여하지 않는 활동들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가?
- 쾌락을 지배하는 신경 하드웨어는 둘로 나뉘어 있다. (하는 일이 잘 되었을 때 느끼는 성취감처럼) 일부 쾌락은 숙고 체계로부터 파생되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쾌락은 조상 전래의 반사 체계의 영향 아래 있다. 그리고 이 체계는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근시안적인 편이며, 두 체계가 갈등을 일으킬 때는 선조 체계에 무게가 쏠린다.
- 두 번째 이유는 좀 더 미묘한 것이다. 우리의 쾌락 중추는 문화와 기술의 전문가인 현대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쾌락을 선사하는 대부분의 기제는 꽤 조야하다(거칠고 조잡스럽다). 때문에 우리는 어느새 이 기제들의 허를 찌르는데 전문가가 되었다. 인간들은 우리의 쾌락 중추를 속일 수 있는 수천 가지 방법들을 찾아냈다.
- 일반적으로 말해 우리의 쾌락 탐지기들은 우리 선조들의 환경에서 바람직했을 특정 자극들에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유전자에 별로 기여하는 것이 없는 수많은 다른 자극들에도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 우리가 유전자의 번식에 직접이든 간접이든 기여하는 일 없이 섹스를 할 때마다 우리의 유전자는 바보 취급을 당하는 셈이다. 가장 역설적인 것은 비록 섹스가 동기 부여의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사람들은 종종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일부러 고안해낸 방식으로 섹스를 한다는 사실이다.
- 인터넷 중독과 같이 좀 더 현대적인 강박 충동이 또 다른 예다. 이 강박 충독은 아마도 우리가 정보를 얻을 때 조상 전래의 회로가 보상을 주면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 이와 비슷하게 우리는 통제에 대해서도 영원한 갈망을 가지고 있다. 비디오 게임은 이 점에서 완벽한 예다. 우리가 이것을 즐기는 까닭은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통제감 때문이다.
- 우리의 쾌락 중추는 인간 종의 생존을 촉진하도록 완벽하게 조율된 몇몇 기제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손쉽게 (그리고 유쾌하게!) 속아 넘어가는 거칠고 투박한 기제들을 잡다하게 모아 놓은 것이다. 쾌락은 진화생물학자들이 '번식 적응도'라고 부르는 것과 느슨하게만 상관관계가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히 고마운 일이다.
- 우리가 느끼는 가장 강렬한 쾌락들은 많은 경우 일시적인 것이다. 우리는 마치 우리의 장기적인 행복을 최대화하길 바라는 것처럼 처신하지만, 실제로는 무엇이 정말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지 따지는 데는 놀라울 정도로 형편이 없다.
- 인간 마음의 가장 뿌리 깊은 속성 중 하나는 바로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든 거기에 익숙해지는 경향이다. 이것을 가리키는 전문용어는 순응이다. 예컨대 사무실 밖에서 트럭이 요란하게 덜거덕거리면 처음에는 귀에 매우 거슬리지만, 시간이 지나면 별로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이것이 순응이다. 어떤 것이 일정하다면 우리는 그것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다.
- 새로운 물질적 재화는 종종 엄청난 초기 만족을 가져다주지만 우리는 이내 그것에 익숙해진다.
- 얄궂게도 정말로 중요한 듯한 것은 절대적 부가 아니라 상대적 수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료 직원들의 평균 수입이 900만원인 직장에서 800만원을 받을 때보다 동료 직원들의 평균 수입이 600만원인 곳에서 700만원을 받을 때 더 만족해한다. 우리는 그저 부자가 되고 싶은게 아니라 남들보다 부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
- 행복과 관련해 아주 놀라운 한 가지 사실은 행복을 측정하는 우리의 능력이 형편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안에 있는 행복 장치 전체가 실제로 얼마나 클루지 스러운지를 시사하는 또 다른 예다.
- 우리의 주관적인 행복감은 다른 많은 신념들과 마찬가지로 맥락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유동적인 것이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지에 대해 생각하면 할 수록 그만큼 덜 행복해진다. 자신의 처지에 대해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보다 더 행복한 경향이 있다.
- 진화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내부 작용을 이해하든 말든, 심지어 우리가 행복하든 그렇지 않든 신경 쓰지 않는다. 행복은, 또는 더 정확히 말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는 우리를 움직이는 동력 이상의 특별한 것이 아니다. 진화는 우리가 행복하도록 우리를 진화시킨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도록 우리를 진화시켰다.
우리가 느끼는 '행복감' 또한 클루지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번 챕터의 내용은 매우 인상 깊었다. 나는 오랜 시간을 고민한 끝에 내 삶의 목적이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실제로 더 행복한 삶을 살기위해 하루 하루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 클루지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행복'이라고 말하는 나에게 "행복? 그거 클루지야. 정신차려" 라는 대답을 하고 있다. 그래서 더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고, 읽는 내내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해야할까? 라는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챕터를 통해 내가 다다른 결론은 다음과 같다. 나는 이 챕터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 마지막에 나온 "진화는 우리가 행복하도록 우리를 진화시킨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도록 우리를 진화 시켰다." 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인데, 애석하게도 우리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변화된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고 이내 익숙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꿈꿔왔던 어떤 상태에 다다르면 그 행복이 영원할 것 같지만, 막상 그 꿈꿔왔던 상태로 계속 살다보면 그 상태가 나의 기본값으로 설정되어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처음처럼 행복하지 않게 된다. 또 다른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진짜 행복과 가짜 행복
문제는 우리가 이 책 클루지에 나오는 것처럼 '진짜 행복'과 '가짜 행복'을 쉽사리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특히나 가짜 행복들이 주는 순간적인 쾌감과 유혹은 너무도 강렬해서 거기에 빠져들기가 매우 쉽다. 하지만 이런 가짜 행복들(ex. 무의미한 TV프로그램이나 유튜브 컨텐츠 등을 시청하며 시간을 축내는 것, 약물에 중독되는 것 등)은 추구하면 추구할 수록 더욱 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내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 살면서 끊임없이 추구하더라도 내가 계속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예를 들어 나의 경우엔 가족들과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기쁨, 배움을 통해 성장한다고 느끼는 기쁨, 다른 사람들을 도움으로써 느끼는 기쁨 등이 그것이다), 어차피 내가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도록 설계된 존재라면 굳이 그것을 부정하고 가짜 행복의 유혹에 빠져드는 것보다는 나를 움직이는 긍정적인 행복들을 추구하는 것이 내 삶을 위해서 훨씬 더 나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