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행자 책을 읽다보면 유독 많이 등장하는 책이 있다. 바로 개리 마커스의 '클루지' 이다. 역행자의 저자인 자청은 이 클루지라는 책을 읽은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고 이야기하며, 인간의 마음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를 오히려 이용할 줄 안다면 그곳에 부자가 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역행자 책을 읽고나면 거기서 소개한 두 가지 책은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는 앞서 읽은 '당신의 뇌는 최적화를 원한다' 였고, 나머지 하나가 바로 이 '클루지'이다.
오늘은 바로 이 '클루지'라는 책의 앞단에 나온 내용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클루지의 정의
클루지란 어떤 문제에 대한 서툴거나 세련되지 않은(그러나 놀라울만큼 효과적인) 해결책을 뜻한다. 예컨대 8~90년대 TV 드라마로 방영했던 맥가이버 라는 프로그램에서 주인공이 빨리 도망치기 위해 절연 테이프와 고무 매트로 급조해서 만든 신발과 같은 그러한 해결책을 말한다.
혹은 아폴로 13호의 달착륙선에서 이산화탄소 여과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우주비행사들의 목숨이 위태로울 때, 우주왕복선에 있는 비닐봉지와 마분지 상자, 절연 테이프, 양말 한쪽으로 여과기 대용물을 만들어서 우주비행사의 목숨을 건졌던 사례 역시 클루지의 적절한 사례이다. 당시 우주 비행사 중 한 명이었던 짐 러벨은 이 여과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이 장치가 특별히 멋있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작동했어요."
위와 같은 사례들을 통해 클루지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겠지만, 저자인 개리 마커스는 이러한 사례들은 인간의 마음에 비할바가 못되며 인간의 마음이야말로 가장 기상천외한 클루지이자, 맹목적인 진화 과정이 빚어낸 기이한 산물이라고 언급한다. 저자는 왜 이렇게 이야기했을까?
인간의 마음은 많은 결함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우리는 종종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도 못한다.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우리의 결함들을 그냥 받아들인다. 감정의 폭발, 그저 그런 기억력, 편견에 사로잡히는 경향 등을 우리는 우리 마음의 표준적인 능력으로 받아들인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 마음이 클루지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상자' 밖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최선의 과학은 종종 사물이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이해하는 것보다 사물이 어떻게 달리 존재할 수도 있었을까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 신체에도 클루지가 숨어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의 척추는 형편없는 해결책이다. 만약 네 개의 기둥이 균등하게 교차 버팀목 역할을 하면서 몸무게를 분산해 지탱했다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단 한개의 기둥으로 전체 몸무게를 지탱하는 척추는 엄청난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직립 보행 덕분에 우리는 똑바로 선채로 손을 자유롭게 놀리면서 생존할 수 있었지만, 그 대가로 많은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요통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적절하지 못해 보이는 해결책이 우리 몸에 들러붙었을까? 척추가 두 발 동물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구조가 네발짐승의 척추에서 진화했기 때문이다. 즉 불완전하게나마 일어서는 것이 아예 일어서지 않는 것보다(우리처럼 도구를 사용하는 생물에게) 더 나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 눈의 감광 부위(망막)는 머리 앞쪽이 아니라 뒤쪽을 향해 설치되어 있다. 이로 인해 우리 두 눈에는 빛에 반응하지 않는 맹점이 하나씩 생기게 되었다. 이 역시 클루지의 대표적인 예다. 그 밖에도 우리의 신체는 불완전한 것들로 가득하다. 콧구멍 위에 쓸모없이 돌기가 나 있고, 치아는 썩으며, 골치 아픈 사랑니가 나오고 털도 없고 부드러운 피부는 베이고 물리기 쉬우며, 햇볕에 타기까지 한다.
이렇게 닥치는 대로 체계가 구성된 유일한 이유는 이전에 있는 것을 기초로 그 다음 진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유한 결함들은 인간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동물 세계에도 수십 가지 결함들이 널리 퍼져 있다. 이처럼 자연은 쉽게 클루지를 만들곤 한다. 자연은 그것의 산물이 완벽한지 또는 세련됐는지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작동하는 것은 확산되고 작동하지 않는 것은 소멸할 뿐이다. 성공적인 결과를 낳는 유전자는 증식하는 경향이 있고, 도전을 이겨내지 못하는 생물을 낳는 유전자는 사라져버리는 경향이 있을 뿐이다. 이 게임의 이름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적절함'이다.
우리의 신체 뿐만 아니라 마음 역시 '클루지'이다
우리의 신체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과 우리 마음도 그렇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실제로 사람들은 오랫동안 다른 식으로 생각해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합리적인 동물'이라고 했다. 여러 경제학 학자들은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바탕으로 자신의 '효용'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린다고 가정하였다. 또한, 지난 10년 동안 많은 학자들은 사람들이 수학적으로 최적의 방식으로 추론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진화시리학에서는 "자연선택은 언덕을 오르는 과정과도 같아서 실제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설계 가운데 최선의 것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진화의 광대한 시간에 걸쳐 많은 대안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자연 선택은 최고로 잘 제작된 기능적 설계의 축적을 야기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제시하는 관점이 조금 다르다. 자연선택이 최고로 잘 제작된 기능적 설계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또한 분명한 사실은 자연선택이 최고의 설계를 결코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 진화심리학자들과 달리, 이 책의 저자인 개리 마커스는 인간의 마음이 신체만큼이나 클루지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를 다시 검토해야만 할 것이라고 말한다.
왜 이토록 우리는 불완전할까?
진화의 핵심 기제인 자연선택은 진화과정 중에 나타나는 돌연변이만큼만 좋은 것이다. 어떤식으로든 나타난 돌연변이가 유익하다면 그것은 확산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가장 유익한 변이는 아쉽게도 아예 나타나지도 않을 수 있다. 나타나지도 않은 변이는 당연히 선택될 수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유전자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진화는 나타난 것들 가운데서 차선의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진화는 궁극적으로 완벽의 문제가 아니다. 진화는 곧 적당히 좋은 결과를 얻는 일의 문제다. 이런 결과는 경우에 따라 아름답고 세련된 것일수도 있지만, 클루지일 수도 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진화는 이 두 가지를 모두 낳을 수 있다. 생물의 세계에는 절묘한 측면들과 아무리 좋게 보아도 날림으로 된 측면들이 함께 존재한다.
오늘날의 생명 현상은 이전 생물들의 역사에서 비롯한 측면이 있다. 지금 존재하는 형태들은 이전 형태들의 수정판일 뿐이다. 예컨대 인간의 척추가 이렇게 생긴 까닭은 그것이 상상할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있던 것(네발짐승의 척추)을 토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것을 '진화의 관성'이라고 부른다. 뉴턴의 관성에 따르면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는 경향이 있다. 이와 비슷하게 진화 역시 맨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보다는 이미 있는 것에 수정을 가하면서 작업하는 경향이 있다.
진화의 관성이 생기는 까닭은 새로운 유전자가 이전 유전자들과 조화롭게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며, 즉각적인 방식으로 진화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자연선택은 당장 이로운 유전자들을 선호하고 장기적으로 더 나을지도 모를 대안들을 폐기하는 경향이 있다. 한마디로 말해 진화는 종종 옛것 위에 새로운 체계를 쌓아 올리는 식으로 전개된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끊임없이 생존하고 번식해야만 하기 때문에 진화를 통해 최적의 체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할 때가 있다. 중간에 생물의 작동을 멈출 수는 없으며, 때문에 그 결과는 옛 기술에 새로운 기술을 쌓아올리는 것처럼 꼴사나운 것이 되곤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의 최종 산물은 클루지가 되기 쉽다.
진화가 마음을 지배하는 강력한 이유 보통 인간의 삶과 보통 원숭이의 삶은 상당히 다르지만, 인간의 유전체와 영장류의 유전체는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98.5%가 동일). 이것은 인간 유전물질이 거의 대부분 언어도 없고 문화도 없고 사려 깊은 생각도 하지 못했던 생물의 단계에서 진화했음을 시사한다. 이것은 우리를 인간으로서 가장 뚜렷이 정의해주는 특성들이 원래 매우 다른 목적에 적합한 유전적 토대 위에 세워졌음을 뜻한다. 한편으로는 진화의 관점에서 포유동물이 지구상에 존재한지는 3억 년 가까이 됐지만 인간은 기껏해야 몇 십만년을 살아왔고, 나아가 언어, 복잡한 문화, 사려깊은 사고력 등은 생긴지가 겨우 5만년쯤 되었을 것이다. 진화의 표준에 견주어 볼 때, 이것은 결함을 제거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지만, 이전 진화의 관성이 축적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마치며...
이제 막 프롤로그만 읽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뒷 내용들이 궁금해진다. 특히 우리의 몸과 마음이 이전에 진화된 버전에서 계속 누더기처럼 덮어 씌워지며 진화해왔다는 설명이 기발하면서도 설득력있게 다가왔다. 역행자의 저자인 자청은 클루지의 개념을 소프트웨어에 빗대며, 초기에 어설프게 만들어진 버전을 계속 패치 업데이트만 하면서 다듬어 가는 모습으로 설명했는데, 이 비유가 참으로 적절한 설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신체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여러 가지 결함들이 발생하는 것이고, 우리가 그러한 결함들을 극복할 때(본능을 거스를 때) 남과 다른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표현은 조금 다르지만 우석의 책 '부의 본능'에서 이야기하는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부의 본능에서는 결국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원시시대부터 생존을 위해 유전자에 각인 되어온 본능들(즉, 클루지)에서 발생하는 오류들을 극복해야만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역행자'에서 자청이 클루지를 강조하며 클루지와 반대로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결국 요약해보면 본능에 충실한 삶일수록 가난해지고, 본능을 거스를수록 성공한 삶을 살 가능성이 높아진다.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본능에 충실할수록 동물에 가까운 삶이고 이를 거스를수록 인간답게 사는 삶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나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막상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실제로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알고 있어야 행동을 하든 말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배워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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