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인플레이션을 가리켜 40년만에 찾아온 최악의 인플레이션이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과연 40년전의 인플레이션은 어땠을까? 왜 발생했고 어떻게 극복을 했을까?
이를 복기해보면 연준이 경기 침체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연일 강도 높은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는 오건영 작가의 책 '인플레이션에서 살아남기'에 알기 쉽게 나와있다. 그 내용을 알아보자.
연준의 탄생과 샤워실의 바보
미국 연준은 1910년대에 탄생했다. 그 이후로 100년 이상 이어오면서 수많은 경제의 변화를 겪어왔다.
대공황부터 시작해서 2차 세계대전, 세계대전 이후 찾아온 역대급 호황, 석유파동과 경기 침체, IT버블 붕괴와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최근의 코로나19 사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호황과 불황의 반복을, 그리고 물가의 상승과 하향 안정 사이클을 경험해왔다.
그런 경제의 변화속에서 연준은 금리 인상과 인하 등의 다양한 정책 저방을 해왔다.
과연 연준의 처방은 매번 성공적이었을까? 당연히 수많은 성공과 실패를 반복했다.
'샤워실의 바보'라는 표현이 있다. 샤워실에 들어가서 물을 틀었는데 엄청나게 찬물이 쏟아진다. "앗 차거!"라고 놀라면서 샤워기 꼭지를 반대로 돌린다. "앗 뜨거!"를 외치면서 다시 돌리고 "앗 차거! 앗 뜨거!"를 몇 번 반복하다가 적정 온도를 맞춘다. 이는 중앙은행의 정책을 풍자하는 아주 유명한 비유이다. 물가를 잡으려고 하면 경기가 침체되고 경기 침체에 신경쓰면 인플레이션이 오는 그런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말한다.
거대한 인플레이션의 시작 - 금본위제 철폐
1970년대의 거대한 인플레이션이 바로 연준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이다.
2차 시계대전이 끝난 이후 미국 경제는 독보적인 성장을 보인다. 1960년대 중반 구소련과의 냉전 갈등이 극에 달하고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사회적인 불만이 커질 때 즈음, 당시 미국의 린든 존슨 대통령은 강한 복지 정책을 발표한다. 그리고 이런 사회 복지 지출은 차기 대통령인 닉슨 행정부에서도 이어진다.
강한 재정 지출은 일시적으로 사람들의 소비를 크게 증가시켰지만 재정 지출이 큰 만큼 미국의 재정 적자는 심해졌다. 여기서 달러의 신뢰도에 큰 영향을 주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바로 1971년 8월 닉슨 대통령이 금본위제도를 철폐한 것이다.
이 제도를 철폐하면서 미국은 달러 공급을 자유롭게 늘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달러의 가치는 떨어지게 되고 1960년대 중반 이후 살짝 오르기 시작하던 인플레이션은 1970년대 초반에 접어들면서 맹위를 떨치기 시작한다. 거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중동 산유국들이 미국에 대한 원유 수출 금지 정책을 발표한다. 미국 전역 주유소에 "No Gas"라는 팻말이 붙기 시작했고 미국 내 에너지 구입 비용이 크게 증가하기 시작한다.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지기 시작하던 시기에 원유 공급 중단까지 터져서 인플레이션을 더욱 더 강하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연준의 태도는 어땠을까? 당연히 인플레이션을 사전에 제압해야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당시 연준은 '국제유가 상승으로 빚어진 강한 물가 상승인데 연준이 이걸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는가'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이 말은 일견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연준이 저지른 큰 실수이기도 했다.
전세계 유일의 인플레이션 파수꾼인 연준이 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소극적인 태도로만 일관하자 물가 상승은 그 누구도 제어할 수 없다는 심리가 시장 전반에 깔린 것이다.
중요한 건 물가가 오를 것 같다는 심리, 즉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다.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강해지면 미래의 소비를 당겨오면서 수요가 지금 폭발하게 되고 인플레이션을 더욱 심화시킨다. 아무리 공급 사이드의 인플레이션이라고 해도 인플레이션을 아무도 경계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면서 장기적으로 이어지게 되면 사람들의 마음속에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박히게 된다. 1970년대 연준 의장이었던 아서 번지는 이걸 간과했고 결국 그 인플레이션은 1970년대 말까지 10년 이상을 이어가게 된다.
해결사의 등장 - 폴 볼커
영원할 것 같았던 1970년대의 장기적인 물가 상승세는 1980년대 들어서 드디어 꺾이게 된다.
이 때 해결사로 등장했던 사람이 바로 1970년대 말 새롭게 연준의장으로 취임한 폴 볼커다.
폴 볼커는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실물경기의 단기적인 침체를 감수하더라도 인플레이션의 뿌리를 뽑으려고 했다. 그리고 강하게 돈줄을 죄기 시작했다. 시중에서 유동성을 계속해서 빨아들이자 자금이 부족해지게 되고 돈의 공급이 크게 줄어드니 돈의 값인 금리가 튀어오르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의 기준금리라고 할 수 있는 초단기 금리가 무려 20% 가까이 빠르게 상승하게 된다.
1980년대 초반 미국의 실업률은 10%를 돌파했는데,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실업률보다도 더 높은 수준의 상당한 불경기였음을 보여준다. 인플레이션이라는 심각한 병을 치료하기 위한 희생으로 미국 경제는 아례적인 경기 침체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금리가 높게 오르고 불경기가 찾아오니 당연히 실물 결제의 수요는 큰 폭으로 위축되었다. 수요는 사라졌는데 제품 가격은 여전히 높으니 그 가격에는 아무도 물건을 사지 않으려고 하고 자연히 가격은 계속해서 떨어지게 된다. 결국 빠른 속도로 물가가 안정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미국의 금리가 높아지자 달러화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게 되었고 달러가 강세를 보이자 미국으로 들어오는 수입품을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사들일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수요의 위축으로 물가가 낮아지고, 달러의 강세로 수입 물가까지 낮아지게 되면서 이 두가지의 시너지로 빠른 속도로 미국 내 물가가 안정되었다.
1970년대의 너무나 강했던 인플레이션은 1980년대 폴 볼커의 강력한 긴축 정책으로 제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치른 비용이 만만치 않았는데 그 과정에서 미국 중소기업의 40%가 파산하고 역대급으로 실업자들이 넘쳐나는 희생을 치러야만 했다.
2023년 현재 연준의 스탠스
오늘날 연준이 성장보다는 물가를 잡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지금 인플레이션을 잡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1970~80년대의 아픈 교훈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인플레이션을 두고 보면 장기화가 되어 더 큰 희생을 감수해야만 뿌리를 뽑을 수 있게 되기 대문에 지금 조금 아프더라도 완전히 인플레이션을 잡고 가려는 것이다.
물가를 잡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경기 침체가 오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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