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비범한 사람과 평범한 사람의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feat. 탁월한 사유의 시선_최진석 교수)

by 내가그린대로산다 2023. 4. 28.
반응형

나는 삼국지를 좋아한다. 비교적 어린 나이부터 삼국지를 읽었는데(물론 만화였다), 어린 시절에는 관우나 장비, 조운처럼 싸움 잘하는 장수들을 좋아했다. 그 때는 수많은 병사들 사이를 종횡무진 누비고 적장의 목을 베어 승리를 가져오는 용맹한 장수가 최고라고 생각했다. 관우가 싸움을 잘하는지 조운이 싸움을 잘하는지 따위가 나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

 

나이가 조금 더 들면서 삼국지를 소설로 읽고 게임도 하게됐다. 그 즈음에도 여전히 무장들을 더 좋아했지만, 삼국지를 조금 더 알게 되면서 오호대장군 같은 장수들보다 오히려 제갈량 같은 책사들이 더 귀하게 여겨진다는 사실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결국 전장에 나가서 싸우는 것은 장수들인데 왜 정작 본인은 싸움도 못하면서 뒤에 숨어 이래라 저래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더 높은 대접을 받을까?' 나는 이점이 항상 궁금했었다. 당시 한창 삼국지 게임에 심취해 있다보니, '지력만 높은 책사들 보다는 무력도 높고 지력도 높은 조운 같은 캐릭터가 가장 뛰어난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

 

그 뒤로도 나이를 먹고 인생을 더 살아보니, 이제는 왜 유비가 관우보다 제갈량을 더 높게 대했는지에 대해서 딱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막상 겪어보니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몸으로 하는 싸움을 잘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싸움을 잘하는 사람들, 즉 정치인, 언론인, 기업인 등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속에 있는 '왜'에 대한 궁금증이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그 동안 살면서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레 보고 듣고 느껴왔지만 정작 '그들이 어떻게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인지, 제갈량과 같이 비범한 사람은 평범한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 것인지'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었다. ​

 

그리고 그 답은 오늘 소개할 이 책 '탁월한 사유의 시선(최진석 저)'을 읽고 비로소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바로 '사유(생각)의 높이' 차이였다. 이 책에 따르면, 각자가 시선을 두고 있는 생각의 높이가 곧 그 사람이 존재하는 세계의 수준이 된다. 즉 얼마나 높은 생각을 할 수 있는지에 따라서 각자 존재하는 차원이 달라지고, 더 높은 차원에 있는 사람은 그 보다 아래 차원에 있는 사람들을 좌지우지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결국 '생각'을 말하고 있다. 생각의 중요성은 주위를 잠시만 돌아보면 알 수 있다. 자연 세계를 제외하고,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다 생각의 결과다. ​
  • 버스, 지하철, 칫솔, 모자, 교실 등등이 모두 생각의 결과들이다. 구체적인 물건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독재, 공화제, 사회주의 등등과 같은 제도나 이념들도 그렇다. 정치, 교육, 법률의 제도들도 모두 다 생각의 결과들이다. 그러니까 생각을 추적하고 그것을 이해하는 일은 인간을 가장 높은 차원에서 혹은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이해하는 일이다.

 

사람마다 '생각의 높이'가 다르다

'생각의 높이'라는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삼국지에서 제갈량 한 명에게 동오의 수 많은 책사들이 왜 그렇게 쩔쩔맸는지, 탁월한 지략가 한 명의 존재가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정도로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를 비로소 알 수 있다. '천하삼분지계'를 논하는 제갈량의 수준은 일개 전투에서의 승리와 패배를 고민하는 여느 장수들과는 이미 차원 자체가 다른 것이다. 제갈량이라는 더 높은 차원에 존재하는 사람이 짜놓은 판 위에서, (몸으로 하는)싸움을 잘하는 장수들은 마치 장기 말과 같은 역할을 할 뿐이다. 가장 높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그 세계에서 가장 높은 차원에 존재한다. 이는 마치 프로 기사가 아마추어들과 바둑이나 체스를 두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아마추어들은 프로의 수를 읽지 못하지만, 프로에게는 아마추어들의 수가 뻔히 보인다. 이게 바로 '생각의 높이'의 차이이다.

출처 : pixabay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인위적으로 생겨난 것들은 모두 누군가의 생각의 결과이다. 생각의 힘은 이렇게 세계를 좌지우지 할 정도로 위대하다. 유발 하라리의 저서 '사피엔스'에서는 호모 사피엔스가 번성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를 '허구를 믿는 힘'이라고 이야기 한다. 상상력( = 생각하는 힘)은 사피엔스가 다른 유인원들 대비 우월해질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지만, 후대의 인간들에게도 여전히 강력한(다른 차원을 야기하는) 힘이기도 하다. ​

 

그렇다면 과연 '생각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이 책 '탁월한 사유의 시선'에서는 자신이 똑바로 서야 비로소 생각하는 힘이 나올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자신이 바로선다는 것은 자기 삶의 주체(주인)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의 저자인 최진석 교수는 남이 만들어 놓은 지식/기준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대답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지식과 기준의 생산자가 되는 '질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삶에서 편안함과 안정을 추구하기 보다는 불편함과 호기심을 가져야 하고, 사물을 볼 때 기존의 관념에 따라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게 바로 '주체'로서의 삶이라고 말한다. 그런 삶을 살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질문(생각)'이라는 것이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

 

기존에 만들어져 있는 것들은 모두 누군가의 '생각의 결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존의 것'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기존에 그렇게 해왔으니 오늘도 내일도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경우들이 많다. 즉,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생각을 하는 일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평소에 생각하는 훈련을 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어렵다. 한마디로 머리가 아프니까(힘드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민하지 않고 기존에 살던 방식대로 그냥 산다.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편하기는 하다. 실제로 회사에서 기존의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개선을 시도 해봤던 사람이라면 주변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한번 쯤 들어봤을 것이다. "야, 왜 머리아프게 일을 벌려. 그냥 하던대로 해. 그게 편해." 이게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누군가 만들어놓은 기준에 자신을 맞추는 삶(=종속적인 삶)을 살아간다. ​

 

생각의 수준이 곧 삶의 수준이다

그런데 이것을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실 '생각하는 힘'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내가 '생각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든지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꼭 세계에서(혹은 우리 나라에서) 생각을 가장 잘하는 사람일 필요는 없다. 나와 경쟁하는 사람들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 동네에서 'A'라는 사업을 하는 사람 중 내 생각의 수준이 가장 높다면 적어도 우리 동네에서는 'A'사업으로 나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

 

'역행자'의 저자인 자청은 인생에서 성공하는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인생에서 성공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남들보다 똑똑해지면 된다. 남들보다 똑똑해지기 위해서는 꾸준히 책을 읽고 글쓰기를 하면 된다. 2년만 그렇게 꾸준히 하면 누구든지 인생이 바뀐다." ​

 

여기서 남들보다 똑똑해진다는 말의 의미는 '생각의 수준(차원)'이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앞서 나왔던 얘기들과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똑똑해지는 방법으로 '글쓰기'를 언급한 것도 주목해야 한다. 나 역시 그의 생각에 동의하여 글쓰기 훈련을 시작했고 아직까지도 꾸준히 실행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한 이 책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통해 내 방향이 옳았다는 것을 보다 더 확신하게 됐다. 독서가 누군가의 지식을 받아들이는 '대답'에 가깝다면, 글쓰기는 나 스스로 지식을 생산하는 '질문'에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글쓰기를 통해서 '생각하는 훈련'을 할 수 있고, '주체'가 될 수 있다. ​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들은 '불편함'보다는 '편안함'을, '낯선 것' 보다는 '익숙한 것'을 추구한다. '종속적인 삶'이 어감은 별로 좋지 않지만 사실 그것만큼 안정적이고 편안한 것도 없다. 아마도 그렇게 사는 것이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꾸준하게 '생각하는 훈련'을 하는 사람들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도 살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의 수준'이 범인들과는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꼭 그렇게 인생을 피곤하게 살아야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맞다. 어차피 인생에 정답은 없다. 어떤 삶을 살 것인지 각자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의 수준은 사실 그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가 가진 생각의 높이일 뿐이다. 생각의 높이가 활동의 높이를 결정하며, 활동의 높이가 삶의 수준을 결정한다. 결국 생각의 높이가 세계의 수준을 결정한다. ​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열심히 배우는데 항상 제자리 걸음인 사람들의 특징(feat. 최진석 교수)

며칠 전 '배움'에 대한 아주 인상 깊은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서강대학교 철학과 최진석 교수의 강의인데,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와닿고 좋아서 여러 번 돌려서 봤다. 그 내용들을 두고두고

naegagreen.com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