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면접만 20년 넘게 봤어. 이제는 면접실 들어올 때의 후보자 눈빛만 봐도 어떤 사람인지 알아."
내가 채용 담당자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이다. 면접관 중에는 자신이 사람을 잘 본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특히나 회사 생활을 오래한 임원들 중에는 '사람보는 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분들도 있다. 앞서 나온 말은 그런 분들이 면접에 참석할 때 하는 단골 멘트이다. 그렇다면 이런 분들은 정말로 사람을 '잘' 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자기 입으로 사람을 잘 본다고 하는 사람 중, 십중팔구는 사람을 잘 못본다.
과거 HR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할 때 고객사들(주로 국내 대기업들)의 채용 data를 분석할 일이 많았는데, 대부분의 기업에서 한결 같이 유사한 결과가 나왔던 것이 있다. 바로 임원 면접결과와 입사 후 성과 간의 상관 관계는 0에 수렴한다는 점이다. 0에 가까우면 그나마 다행이고, 약하게나마 역상관인 경우가 많았다. 이 결과를 해석하면 임원 면접에서 좋은 결과를 받은 사람이 입사 후에 실제로 일을 잘할 확률은, 반반이거나 혹은 반에도 살짝 못미친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는 임원 면접까지 올라온 사람들을 제비뽑기로 채용하든 면접을 보고 채용하든 별 차이가 없다(오히려 제비뽑기가 낫다)는 말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을 '잘' 본다고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부터 정의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을 '잘' 본다는 것은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 특히 잠깐의 대화나 관찰 등을 통해 그 사람의 실체를 빠르게 알아차리는 능력'을 말한다. 이를 면접 장면에 적용해보면 사람을 '잘' 본다는 것은 지원자가 해당 직무와 우리 회사에 '적합한' 사람인지를 빠른 시간내에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하지만 자신이 사람을 잘 본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이것과 조금 다르다. 그들이 말하는 사람을 '잘' 본다는 것은 대부분 '이 사람이 내 입맛에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파악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즉, 내가 인간적(또는 업무적)으로 선호하는 스타일인지 아닌지를 '잘' 알아차릴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평가 기준은 대개 상대방의 말하는 태도, 어조, 인상(관상) 등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직관'이라는 말로 포장하지만 결국 '느낌적인 느낌'이 매우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들이 척보면 안다고 말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들이 사람을 잘 못볼 수 밖에 없는 두 가지 이유를 추정할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면접의 '목적'이다
면접은 내 스타일에 맞는 사람을 찾는 자리가 아니다. 해당 직무에 적합한 사람인지, 그리고 우리 조직에 부합하는 사람인지를 판단하는 자리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해당 면접을 통해서 어떤 사람을 채용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평가 요소와 기준을 정해놓고 있다. 모든 역량을 다 갖춘 사람을 찾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짧은 면접 시간 동안 판단할 수도 없기 때문에, 각 기업의 인재상에 따라 채용 시 가장 중요하게 판단해야 평가 요소들(핵심 역량)을 정해 둔다. 예를들면 어떤 회사는 '혁신적 사고'와 '도전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반면, 다른 회사는 '끈기'와 '팀워크'를 중요하게 여기는 식이다. '주인의식'과 같이 대부분의 회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항목들도 있지만 각 회사의 분위기에 따라 평가 요소들이 조금씩 다르다.
어쨌든 이런 평가 요소들이 그냥 정해지는 것은 아니고, data에 기반하여 실제로 그 회사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들의 특성이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본인 입으로 사람을 '잘' 본다고 말하는 분들은 대부분 그런 평가 요소와 기준에 따르지 않고 자신이 정한 기준을 따른다. "평가 요소니 기준이니 그런거 다 쓸데 없는 이야기고 내가 그냥 딱보면 안다"고 말하며,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찾는다. 혁신과 도전성이 요구되는 직무인데, 자신의 기준에 따라 예의바르고 싹싹한 사람인지를 확인한다. 이 경우에 설령 제대로 판단했다고 하더라도 해당 지원자가 과연 그 직무에 적합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이유는 바로 그들이 사람을 '잘' 봤다고 생각하는 '근거'다
평생을 같이 살아도 속을 잘 모르는게 사람인데, 30분 내외로 이야기 해보고 그 사람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가능할까? 당연히 어렵다. 그래서 면접이 쉽지 않다. 그리고 이제는 면접관들보다 지원자들이 면접에 대해서 훨씬 더 전문가이다. 요즘 지원자들은 어떻게 하면 면접을 '잘' 볼 수 있는지 철저히 공부하고 준비한다. 반면에 대부분의 면접관은 어떻게 하면 사람을 '잘' 판단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공부하지 않는다. 그저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자신의 경험에 따를 뿐이다.
내가 아는 한, 현존하는 면접 방식 중 가장 타당도가 높은 것은 경험기반의 구조화 면접이다. 이 면접 방식은 평가 요소와 기준, 그리고 면접 질문이 모두 구조화 되어 있어서 모든 지원자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고, 다른 판단 요소들(ex. 인상, 언변 등)을 배제한 채 오로지 지원자의 구체적인 과거 경험(실제 발현된 행동 사례)에 기반하여 역량 보유 여부를 판단한다. 그런데 왜 하필 과거 경험(행동)을 확인할까?
의지가 각오는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말을 하는 것은 쉽다. 특히 면접 장면이라는 특수 상황에서는 어떤 말이든 할 수 있다. 상황이 간절한 만큼 그 순간 순간의 말들에는 진심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 진심이 입사 후에도 변하지 않고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평생 살아오면서 책 한권 읽어보지 않았던 사람이 입사 후에는 매주 1권씩 책을 읽을 것이라고 면접장에서 아무리 진심으로 이야기 한다고 해도 그게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말이다.
반면 경험은 다르다. 과거에 일관적으로 어떤 행동을 반복해왔던 사람은 미래에도 그 행동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10년 넘게 매주 1권 이상의 책을 읽고 있으며, 독서 노트까지 만들어서 꾸준히 그 내용들을 정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입사 후에도 꾸준히 책을 읽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이 훨씬 더 타당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런 검증된 방법들을 무시하고 면접이라는 잠깐의 시간을 그 사람의 인상과 말투, 얼마나 진정성 있게 '말'을 잘하는지, 어떤 의지와 각오를 보이는지 등 자신의 20년 노하우에 기반하여 수집한 근거들로 사람을 판단하다보니 당연히 예측의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왜 그 분들은 자신이 사람을 '잘' 본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아마도 이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확증 편향' 때문 일 것이다. 20년 넘게 면접을 봤으면 그 동안 수백명에서 많게는 수천명까지도 면접을 봤을 것이다. 그중에는 당연히 입사 후에 일을 잘하는 사람도 있었을텐데, 그런 사람들만 선택적으로 지각하는 것이다. "쟤 내가 뽑았어. 내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기가 막히다니까." 하면서 그렇게 자신의 판단이 옳았던 정보들만 기억속에 저장되는 것이다.
'확증 편향'이란 자신의 견해 또는 주장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그것의 사실 여부를 떠나) 선택적으로 취하고, 자신이 믿고 싶지 않은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말한다. 다른 말로 자기 중심적 왜곡(myside bias)이라 부르기도 한다. 쉽게 말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보편적 현상이다. - 출처 : 나무위키
문제는 이렇게 자신이 사람을 '잘' 본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보니 좀처럼 그 태도가 바뀌지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바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면접관 교육 때 가장 힘든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오히려 "사람 보는 게 너무 어려워. 보면 볼수록 모르겠어." 라고 말하는 분들은 애초에 평가의 정확성도 높을뿐더러 더 열심히 배우려고 한다. 이런 분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좋은 면접관이 된다. 반면에 회사에서 그 동안의 채용 data를 바탕으로 이슈가 있다고 판단한 문제의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들의 방식을 바꾸지 않으려고 한다.
20년 넘게 '내' 방식대로 경험을 쌓았다고 해서 모두가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장담컨대 그렇게 사람을 '잘' 본다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들 중, 실제로 사람을 '잘' 보기 위한 방법들에는 무엇이 있는지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고 공부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오랜 시간 축적된 자신의 실전 경험만이 있을 것이다.
잘 모르고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
스포츠를 해본 사람들은 안다. 제대로 배우지 않고 오랜 시간 자기 마음대로 막 하면 소위 '개폼'이되고 실력도 어느 수준 이상으로는 절대 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게 오랜 시간 굳어져버리면 처음 배우는 사람보다도 교정이 어렵다. 사람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면접을 오래한다고 모두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방향과 방법이다. 잘못된 방향으로 꾸준히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특히나 면접은 어떤 물건을 대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대하는 일이다. 지원자들이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최소 20년 이상의 각기 다른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지원자 모두는 고유한 인격체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잠깐 보는 것만으로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그런 오만한 생각은 지원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면접관이라는 자리는 어떻게든 지원자를 판단하고 평가해야 하는 자리가 맞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조심스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어떤 분야든 오만한 마음이 들면 그 순간부터 성장은 없다. 진정으로 '잘' 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입으로 잘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좋은 면접관이 되고 싶다면 먼저 겸손해야 한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