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토요일 그 동안 재미있게 보던 드라마 악귀가 종영했다. 믿고보는 김은희 작가의 작품답게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고 짜임새있는 스토리를 보여줬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여러가지 추리를 하면서 보게 만드는 작품을 선호하는데, 그런 면에서 악귀는 내게 안성맞춤인 드라마였다.
사실 많은 드라마들이 초중반부에 상당한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가 마지막에와서 큰 실망을 안겨주는 용두사미의 전개를 보여주는데 드라마 악귀는 결말 부분도 만족스러웠다. 다만, 악귀 최종회를 보면서 작품의 전체적인 맥락과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오늘은 그 내용에 대해서 포스팅을 하고자 한다. 아래 내용은 악귀 마지막회 결말에 대한 리뷰이자 감상평으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작품을 아직 안본 분이라면 주의하시길 바란다.
드라마 악귀 마지막회에서 주인공 구산영은 거울 속 세상에 갇혀서 정체모를 악귀에게 쫓긴다. 아무리 도망가려고 발버둥쳐도 악귀는 발목을 잡고 목을 조르면서 구산영을 괴롭힌다. 악귀에게 목을 졸리는 상황에서 힘겹게 악귀의 얼굴을 확인하는데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그 순간 구산영은 자신의 지나간 삶을 돌아보며 그 동안 정작 한 번도 자신을 위해서 살았던 순간이 없었다는 것을 것을 깨닫고,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갖는다("앞으로는 오직 나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을 택할거야"). 그리고 거울 속 세상에서 자기 목을 조르던 악귀(또 다른 자신)을 물리친다.
이후 자신의 육체를 뺏어간 악귀의 손목을 컨트롤해서 악귀 스스로 악귀의 몸(검지 손가락)을 태우게 한다. 이로인해 악귀는 사라지고 구산영은 자신의 육체를 되찾는다. 여기까지는 정말 깔끔한 엔딩이었다.
그 동안 사람들의 손목을 컨트롤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들었던 악귀가, 자신이 했던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손목을 컨트롤 당해서 자살(이미 한 번 죽었는데 자살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당하는 엔딩은 사이다 그 자체였다. 그 장면에서 김태리의 연기 또한 일품이었다.
악귀를 퇴치한 후 현실로 돌아온 구산영은 실제로 그 동안 본인이 하고 싶었던 버킷리스트들을 하나하나 해나간다. 엄마와 단짝 친구를 데리고 집라인도 타고 밤하늘의 별도 보면서 한가로운 날들을 보낸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구산영은 염해상 교수와 함께 선유줄불놀이를 바라보며 활짝 웃는다. 그 순간 또 다시 눈이 잘 안보이기 시작했지만 "그래 살아보자" 라는 대사와 함께 드라마는 엔딩을 맞는다.
얼핏보면 전형적인 해피엔딩으로 보일 수 있는 이 장면들을보고 나는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됐다.
만약 악귀가 사라진 후에도 구산영의 삶이 이전과 똑같았으면 어땠을까? 여전히 편의점 알바와 대리운전을 하면서 하루 하루 힘들게 빚을 갚아야만 하는 그런 상황이었다면? 그런 와중에 눈까지 보이지 않게되는 상황이었다면? 빚은 여전히 산더미 처럼 쌓여있고 하루하루 알바와 대리운전을 전전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그런 상황이었다면, 구산영이 "그래도 살아보자!" 라고 희망차게 말할 수 있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런 엔딩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예전의 구산영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돈이 생겼기 때문이 아닐까? 악귀가 할머니를 죽여서 자신에게 넘어온 유산 덕분에 경제적으로 충분한 여유가 생긴 구산영은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 돈을 받을 수 없다고 난리쳤지만 결과적으로 그 돈을 거부하지 않았다. 결국 버킷리스트니 나답게 사느니 그런 얘기들은 그렇게 삶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기 때문에 할 수 있게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결말 부분에서 약간의 찝찝함이 남는다. 그리고 어찌보면 너무나도 현실적인 모습 같기도 하다. 과정이야 어쨌든 경제적인 여유가 생겼으니 주인공도 자신의 삶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됐지 않은가. 한편으로는 악귀가 가져다 준 돈이 아니었다면 과연 이런 희망적인 결말이 나올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돈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들 한다. 맞다 돈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에서 돈만큼 중요한 것도 많지 않다. 사실 우리가 현실에서 하고 있는 고민들 대부분은 돈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으며, 지금 나를 괴롭히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 중에는 애초에 충분한 돈이 있었다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들이 많다. 인정하기 싫더라도 이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리고 이 드라마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에게 돈이 중요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돈을 통해서 시간을 사고 팔 수 있다는 점이다. 돈이 없으면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해서 쓸 수 없다. 드라마 속 구산영이 그랬던 것처럼 당장 먹고 살 궁리를 해야 하므로 내 시간을 돈과 바꾸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 상황은 누군가 돈으로 내 시간을 샀다는 말이기도 하다. 드라마 속 주인공인 구산영이 편의점 알바를 하며 사장 대신 일을 해줌으로써, 사장은 자신이 직접 일해야하는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즉, 사장은 구산영에게 자신의 '돈'을 주고 구산영의 '시간'을 샀다. 그리고 구산영은 자신의 '시간'을 팔아서 사장에게 '돈'을 샀다.
이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자신을 위해서 쓸 수 있을만큼의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당장 오늘 아침 점심 저녁의 식비, 아이들 학원비, 대출 이자, 핸드폰 요금, 교통비 등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한데, 돈을 벌지 않으면 현재의 생활을 유지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드라마 속 구산영처럼 버킷리스트대로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결국 돈이 없다면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을 돈을 위해 써야만한다. 그리고 반대로 충분한 돈이 있다면 내 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해서 쓸 수 있는 자유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경제적 자유는 곧 시간의 자유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내가 만약 돈을 많이 좋아한다고 해도 그것은 절대로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돈 버는 것을 죄악시 할 필요도 없다. 내가 가진 돈이 늘어나는 만큼 내 시간을 팔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돈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자연히 알 수 있게 된다. 베스트셀러 돈의 속성에서 김승호 회장은 돈을 마치 아끼는 친구를 대하듯 소중하게 다루고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내게 돈이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돈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 부를 일구는 첫 걸음이라고 강조한다.
"부는 돈에 가장 작은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들로부터 돈에 가장 큰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들에게로 이동한다."
- 돈의 속성, 김승호
물론 주객이 전도되어 내 시간을 벌기 위해서가 아닌 돈을 버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인 삶이 된다면 곤란하겠지만, 자기 삶의 주도권을 자신이 갖고자 하는 사람에게 돈이 필요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나는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돈에 대한 자신의 욕망에 조금은 더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당당하게 "나는 돈이 좋다", "나는 부자가 되고 싶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렇게 각자가 원하는만큼의 충분한 부를 일궈서 내 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자유를 얻게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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